[촌지 이야기] <20> 목숨 건 나이아가라 관광
[촌지 이야기] <20> 목숨 건 나이아가라 관광
  • 김영인
  • 승인 2018.05.29 0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행기가 갑자기 덜컹거리더니 밑으로 뚝 떨어지는 느낌이 왔다. 기레기는 겁을 덜컥 집어먹었다. 미국에서 이륙해 캐나다 국경을 넘던 비행기가 별안간 출렁거린 것이다. 깜깜한 밤이었다. 자정도 넘은 시간이었다.

비행기는 계속 심하게 흔들렸다. 기레기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숨을 내쉬었다. 무의식적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새카만 하늘에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반짝이며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는 별이 될 것이라는 요망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정신을 가다듬어보려고 좌석 수를 헤아려보았다. 모두 24개뿐이었다. 바람만 조금 거세지면 어디로 쓸려갈지 모를 정도로 초라한 경비행기였다. 이 경비행기가 국경을 넘으며 헐떡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흑인 청년이 뒤척거렸다. 책을 들고 있는 게 학생으로 보였다. 흑인 학생은 비행기가 덜컹거릴 때마다 책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 두리번거렸다. 표정에는 기레기처럼 겁이 잔뜩 묻어 있었다.

기레기는 건너편 좌석으로 눈을 돌렸다. 어떤 백인 할머니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를 하다가 손으로 십자가를 그리다가 했다. 만약에 불행한 사고가 나더라도 천국에 갈 할머니가 틀림없었다.

기레기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끔찍한 생각도 들었다. 출국하기 전에 가입했던 1억 원짜리 보험도 떠올려 보았다. 아내가 그 보험료로 아이들을 키우며 제대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잡생각이 머리를 고달프게 눌렀다.

이 불안한 비행기가 세찬 바람을 견디지 못해서 만약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한국 기자들 집단 추락사’라는 제목으로 미국이나 캐나다 신문에 기사가 먼저 실리고, 곧 이어 대한민국에서도 보도될 것이다.

한국의 ‘기자단’이 여행경비를 ‘슈킹’해서 놀러 다니다가 캐나다 국경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빈정거리는 기사다. 열심히 ‘취재’를 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만났다는 동정적인 기사는 결코 나오지 않을 게 뻔했다.

애당초 캐나다를 일정에 포함시킨 것이 잘못이었다. 미국 구경이나 제대로 하고 귀국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일행 중 한 기자가 악착같이 우겼다. 모처럼 미국 구경을 하는 김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 쪽에서 보면 보잘것없다고 하더라. 캐나다 쪽에서 봐야 제격이라고 그러더라. 언제 또 올지 모르니 이번 기회에 캐나다까지 가자. 기회를 놓치면 제법 후회들 될 거다. ‘증명사진’ 찍을 기회를 언제 또 잡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우기고 있었다. 그래서 기레기 일행은 캐나다 방문을 일정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예정에 없던 일정을 추가하려면 ‘대책’이 필요했다. 공항에서 기다려줄 사람, 호텔 숙박비 내줄 사람,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안내해줄 사람, 술 살 사람, 밥 먹여줄 사람 등등 여럿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민폐를 끼칠 사람이 필요했다. 그럴 사람을 두루 ‘엮어야’ 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탔더니 ‘아뿔싸’였다. 목숨이 오락가락하게 된 것이다.

괘씸한 것은 미국 항공회사였다. 미국 항공회사는 감히 한국에서 온 무관의 제왕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승객이 적다며 출발을 자기들 멋대로 2시간 이상이나 늦추고 있었다. 승객을 가득 채워야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무관의 제왕들은 ‘뿔’을 내며 항의를 했다. 대한민국이었다면 상당히 혼을 냈을 것이지만, 문제는 떠듬거리는 영어였다. 항공회사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기 나라 무관의 제왕이라면 절대로 그런 식으로 푸대접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결국 출발시킨 게 조그만 비행기였다. 24인승 경비행기였다. 승객이라고는 기레기 일행을 빼면 흑인 청년과 할머니 부부 정도가 전부였다. 그 작은 비행기가 거센 바람을 타고 마구 흔들렸던 것이다.

캐나다의 토론토 공항에 도착하니 시간은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다. 간신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겨우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죽을 위기’는 지나간 것이다.

한 기자가 버럭 소리쳤다.

“배고프다. 밥부터 먹읍시다.”

기레기 일행은 그 때까지 배가 고픈 것마저 잊고 있었다.


<이 글은 도서출판 지식공방에서 펴낸 저서 '촌지'를 약간 수정, 보완해서 재록하는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