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칼럼] 21일은 ‘모르는 척하는 날’
[마포 칼럼] 21일은 ‘모르는 척하는 날’
  • 이정선 기자
  • 승인 2018.05.21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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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국 서한(西漢) 때 왕장(王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학문은 깊었지만 돈이 없었다. 가난한 선비였다. 어느 겨울, 왕장은 병으로 눕게 되었다. 그렇지만 빈털터리가 의사를 부를 수는 없었다. 치료는 고사하고 덮을 이불조차 없었다. 그래서 이불 대신 소가죽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왕장은 자신의 신세가 한심했다. 옆에서 간호하고 있는 아내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현모양처였다. 그런 왕장을 위로했다.

“좌절하면 안 됩니다. 지금 나라의 관리 중에서 당신보다 학문이 높은 사람은 불과 몇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양장은 아내 덕분에 용기를 냈다. 병을 떨치고 일어났다. 더욱 학문을 쌓아 마침내 성공했다. ‘고위 공직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우의대읍(牛衣對泣)’이다. 소가죽을 덮어쓰고 눈물을 흘린다는 뜻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부부를 일컫는 말이다. 부부가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한겨울에 이불조차 없이 소가죽을 걸치고 눈물을 떨구는 빈곤한 생활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5월은 껄끄러운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돈 좀 써야 하는 날이 줄줄이 닥치는 달이기 때문이다. 결혼식도 많은 달이다. 그 바람에 축의금 지출마저 간단할 수 없는 달이다.

여기에 정부가 돈 나가야 할 날을 하나 더 추가했다. 5월 21일, ‘부부의 날’이다. 지난 2007년 시행에 들어간 ‘법정기념일’이다. ‘부부의 날’을 5월 21일로 정한 것은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의미라고 했다.

‘부부의 날’을 제정한 취지는 그럴 듯했다. 이혼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가족도 해체되고 사회문제로 이어지는 현실을 감안,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것이었다.

‘인터넷 사전’을 뒤져보면, ‘부부의 날’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1995년부터 민간단체인 부부의 날 위원회가 매년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하고 ‘건강한 부부와 행복한 가정은 밝고 희망찬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관련 행사를 개최하였다. 2001년 4월 ‘부부의 날 국가 기념일 제정에 관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2007년 5월 2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부부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다.”

그러니까 ‘부부의 날’은 벌써 11년 전에 생긴 날이다. 그렇지만 왕장 부부와 닮은꼴인 가난한 부부에게는 불편한 날이 아닐 수 없는 날이다.

‘부부의 날’은 남편이 아내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날이다. 아내에게 면목 없는 날이다. 아내의 눈치를 봐야하는 날이다.

직업이 ‘가정주부’인 아내는 그런 남편을 덮어주고 시치미를 떼는 날이다. 남편의 주머니사정을 환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부의 날은 ‘모르는 척하고 서로 넘어가는 날’이다. 다행스럽게도 ‘빨간 날’이 아니기 때문에 슬그머니 넘어가기도 쉬운 날이다.

정부는 공연히 ‘법정기념일’을 하나 더 만들어서 돈 없는 부부를 골탕 먹이고 있다. 그래도 21일 하루 정도는 아내가 남편을, 남편도 아내를 알뜰하게 생각해줘야 바람직할 수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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