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칼럼] 다시 불거지는 ‘북한 환상’
[마포 칼럼] 다시 불거지는 ‘북한 환상’
  • 이정선 기자
  • 승인 2018.05.09 0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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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떼를 끌고 ‘방북’하던 당시부터 대한민국은 환상에 빠졌다. 통일이 ‘코앞’일 것이라는 환상이었다. 금강산의 절경을 관광하고,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경하면서 그 환상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심지어는, 통일이 되면 북한의 핵도 ‘우리 것’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북쪽에서 “전쟁이 폭발 전야의 ‘분분초초’를 다투고 있다”고 위협을 하는데도 그랬다.

노무현 정권은 “아무리 퍼줘도 남는 장사”라며 ‘퍼주기’를 계속했다. 대규모 에너지와 식량 지원, 경제특구 개발 등을 통해 북한 경제를 회생시켜주겠다는 ‘중대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제안에는 러시아의 전기를 사다가 북한에 주겠다, 연해주에 농장을 만들어 북한 주민을 ‘이민’시키겠다는 등의 방안도 있었다. 이를 ‘북한판 마셜 플랜’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마셜 플랜은 이름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알다시피, 마셜 플랜은 미국이 서유럽국가의 경제 재건을 지원, 공산주의의 확대를 봉쇄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런데도 공산주의를 지원하자면서 마셜 플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난달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환상’이 재연되는 듯싶어지고 있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의선(서울~신의주)과 동해선(부산~원산)을 이어서 세계로 연결하는 대륙철도 ▲남북한을 거쳐 32개 국가를 연결하는 ‘아시안 하이웨이’ 역할 ▲동해안과 서해안, 남북 접경지역을 H자 모양의 산업벨트로 묶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비무장지대(DMZ)에 환경·관광벨트 ▲잠재가치가 3조9033억 달러(42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광물자원 개발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서울~신의주 고속철도 요금이 얼마가 될 것이며, 서울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까지 고속철도로 5시간25분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남북 화폐 통일론’도 대두되고 있다. ‘보수적인’ 금융기관까지 대북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도 일어나고 있다.

전경련 세미나에서는 남북 경제통합이 이루어질 경우, 5년 동안 경제가 연평균 0.81%포인트 추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자리가 12만8000개 늘어날 것으로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성급한 전망이 아닐 수 없다. 아직 ‘북미 정상회담’도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장밋빛 전망일 뿐이다. 그 많은 장밋빛 전망을 ‘비용’으로 따져볼 필요도 있다.

회담 또는 상담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이익도 감안해줘야 이루어질 수 있다. 서로 이익을 따져야 거래가 성립되는 것이다. 일방적인 거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북한은 자기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그런 결과 훨씬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달라진다고 해도 북한은 철저하게 계산해서 문을 열어줄 것이다.

이에 비해, 그동안 우리가 얻은 이익은 거의 없었다. 있다면 ‘긴장 완화’라는 이익 정도였다. 물론, 긴장 완화라는 이익은 돈을 주고는 살 수 없는 ‘중요한 이익’이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긴장 완화를 얻은 대신 안보에 주름이 가는 손해를 본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05년 광복절 때 ‘남북통일축구대회 친선경기’를 앞두고는 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의 인공기를 훼손한다거나 소각하는 행위에 대해서 정부가 관대하게 대할 때는 지났다”고 경고한 적 있었다. 이 당국자는 그러면서 “이런 범법 행위에는 아주 단호하게 조치를 취하도록 경찰에 지시하기 바란다”고도 하고 있었다.

‘적대국’인 북한의 인공기 훼손을 ‘불법’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렇게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미사일 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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