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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칼럼] 자식이 부모를 때리는 나라
  • 이정선 기자
  • 승인 2018.05.0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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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남쪽에 와카야마라는 곳이 있다. 옛날에는 이 일대가 기이국(紀伊國)이었다. 이 기이국의 구마노라는 마을에서 어떤 젊은이가 자기 아버지를 때려죽인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1658년의 일이다.

젊은이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그런데 젊은이의 주장이 희한했다.

“내가 남의 아버지를 죽였다면 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를 죽였는데 그게 무슨 죄가 되는가. 나의 아버지는 가족의 말을 한 번도 듣지 않고 오로지 괴롭혀왔을 뿐이다.”

젊은이는 조금도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자기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되레 따지려고 들었던 것이다.

이런 덜떨어진 젊은이는 처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선 잘못부터 깨닫도록 가르치기로 했다. 그 ‘교화(敎化)’에 나선 사람이 이전직(李全直)이었다. 조선 사람이었다.

이전직은 매일같이 젊은이에게 글을 가르치고, 사람의 도리를 알려줬다. 그러나 ‘쇠귀에 경 읽기’였다. 젊은이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전직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젊은이를 교육했다. 그렇게 가르친 지 3년이 되는 어느 날, 젊은이가 마침내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어리석었습니다. 내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하루라도 더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습니다. 빨리 처형해주십시오.”

뒤늦게나마 깨닫고 ‘사람’이 되었으니 젊은이를 용서해주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법은 집행되어야 했다. 젊은이는 처형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전직이 지은 게 ‘부모장(父母狀)’이다. 이전직은 ‘부모장’과 함께 ‘실천요령’까지 만들어 젊은이들을 교육시켰다. 아이들이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 의무적으로 수십 번씩 쓰고 외우도록 했다. ‘부모장’은 나중에 ‘명치유신’으로 봉건제도가 무너질 때까지 수백 년 동안 ‘행동규범’이 되었다.

오늘날 이곳에는 이전직의 호인 ‘매계(梅溪)’를 기리는 ‘이매계 현창비(顯彰碑)’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 기념비에는 노산 이은상(李殷相)의 번역문도 함께 새겨져 있다.

“부모 모시는 글 ―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법도를 지키며 염치와 겸손으로 제 일에 충실하고, 정직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지마는 좀 더 다짐하기 위하여는 항상 가르치고 타일러줌이 옳으니라.”

이전직은 왜란 때 일본으로 붙들려간 이진영(李眞榮)의 아들이다.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조선통신사 일행이었던 서장관 남용익(南龍翼)은 일본에서 이전직을 만난 뒤 이렇게 적었다.

“…이전직은 사람됨이 순수하고 중후하다. 시의 음률을 좀 알고, 그림은 아주 썩 잘 그린다. 우리나라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저절로 감격하여 그 근본을 돌아보고 눈물까지 흘렸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연안(延安)의 어떤 젊은이가 아버지 앞에서 밥그릇을 집어던졌다가 ‘사회 문제’로 비화되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일본은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도 잘못했는지 모를 정도로 예의라는 것을 몰랐다. 이전직의 ‘교화’가 없었더라면 일본은 오랫동안 한심한 나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발생한 존속범죄가 9189건에 달했다고 한다. 2012년 956건이던 존속범죄가 작년에는 1962건으로 늘어나 있었다. 존속폭행이 1322건, 존속상해 424건, 존속협박 195건, 체포·감금 21건 등이라고 했다.

이와는 별도로 ‘존속살해’도 5년 동안 266건이 발생하고 있었다. 부모를 살해하는 ‘후레자식’이 매년 50명 안팎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에게 ‘부모장’을 가르쳐준 나라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 ‘어버이날’을 불편하게 만드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경찰이 파악한 것만 이랬다. 자식이 처벌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신고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아마도 몇 배는 될 것이다.

이정선 기자  belly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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