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리에 연기가 끊기는 현상”
“100리에 연기가 끊기는 현상”
  • 이정선 기자
  • 승인 2018.05.0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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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산업의 거의 전부가 농업이던 시절, 가뭄이나 홍수로 농사를 망치면 백성은 떠돌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탐관오리의 수탈이 심할 때도 그랬다. 굶어죽을 수는 없어서 산에 올라가 화전을 일구거나, 또는 도적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마을에는 인적이 끊겼다. 글 좀 하는 선비들은 이렇게 읊었다.

“100리를 가도 인적이 없고, 밥 짓는 연기도 끊겼구나.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니 끝이 없네(百里無人斷午煙, 荒原一望杳無邊).”

국토가 광활한 중국 사람들은 ‘1000리(千里)’를 가도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썼는데, 우리는 ‘100리’였다. 그래서인지 넓은 땅을 찾아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흘러들어가는 백성도 적지 않았다.

이 연기가 보이지 않을 만한 현상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 가동률’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제조업 평균 가동률이 70.3%로 추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의 69.9% 이후 9년만의 최저라고 했다.

‘제조업’ 가동률이니, 공장이 10개 중에서 3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바람에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그만큼 사라지고 있다.

공장이 잘 돌아가지 않는 바람에 생산도 부진해지고 있다. 3월 전 산업 생산은 전달보다 1.2% 감소했다고 한다. 2016년 1월 1.2%가 감소한 이래 26개월만의 가장 큰 감소폭이다.

공장 주변의 연기도 ‘정비례’하고 있다. 음식점과 상가다.

연기가 줄어든 공장은 직원들의 봉급이 밀리거나, 깎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구조조정도 하고 있다. 이는 공장 주변 음식점이나 상가에 타격이다. 연기가 줄어들면서 부품 등의 납품업체의 왕래도 상대적으로 뜸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장사는 ‘이중고’가 되고 있다.

늘어나는 것은 ‘공장 임대·매매 현수막’이다. 공장 주변의 ‘음식점 임대·매매 안내판’이다. 상점 폐업 안내판이다.

가정의 연기는 실업자의 증가와 ‘반비례’하고 있다. 반찬 가짓수라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와 아이들 눈치를 살피고, 아내는 남편이 직장 구하는 것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공장에서도, 음식점에서도, 가정에서도 연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에, 믿었던 수출마저 주춤해지고 있다. 4월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 감소한 500억 6000만 달러에 그쳤다는 소식이다.

정부는 작년 4월의 수출이 너무 호조를 보였던데 따른 ‘기저효과’라면서 “전반적인 수출 증가세는 유지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찜찜하지 않을 수 없다. 수출이 잘 된다는데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산업 생산이 줄어들 리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제조업 가동률 하락이 주로 자동차 등 주력 수출산업의 부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그랬다.

게다가, ‘수출 세계 4강’으로 도약, 2022년에는 일본을 추월하겠다는 ‘신(新) 통상 전략’을 발표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수출 감소다. 반도체 호황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수출 감소다.

정부는 괜찮다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으로 치닫고 있고, 환율 압박도 만만치 않아지고 있다. 무역협회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으로 우리나라가 입을 수출 피해가 최대 367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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