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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기업’의 공통점은?
  • 정동진 기자
  • 승인 2018.04.1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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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토요경제=정동진 기자] 미국 포드자동차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 1세는 ‘폭군’이었다. 경영을 “내 기업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식으로 했다.

​ 그 바람에 유능한 인재를 많이 놓쳐야 했다.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모델 T’의 성공에 공을 세웠던 윌리엄 크눗슨을 떠나게 한 것이었다. 그는 연봉 5만 달러를 거부하고 불과 6000달러를 받으며 경쟁회사인 GM을 택했다. 크눗슨이 옮긴 후 GM은 시보레를 생산, 포드자동차에 큰 타격을 주었다.

포드 1세는 고향 마을의 신문사 ‘디어본 인디펜던트’를 경영하며 유대인을 비난하는 기사를 대서특필한 적도 있다. 정치에 뛰어들어 상원 의원에 출마했다가 패배하기도 했다. 언론으로부터 “전문 분야인 자동차 사업 외의 일에 있어서는 천박한 지식을 가진 무식쟁이인데다 단순한 기계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폭군’ 주위에는 말 잘 듣는 사람만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 해리 베넷이 있었다. 해군 권투선수 출신인 베넷은 포드의 사생활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노조를 탄압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포드는 아들 에드셀이 사망하자 베넷을 사장으로 임명하려고까지 했다. 포드의 오른팔이었다. 그러나 헨리 포드 2세는 경영의 대권을 잡자마자 우선 베넷부터 파면시켰다. <헨리 포드에서 정주영까지, 문원택 등 지음>

일본 기업 파낙의 이나바(稲葉) 회장도 소문난 ‘독재 경영’이었다. 미국의 포춘지가 일본의 대표적 독재 경영자 10명을 선정하는 데 포함되었을 만큼 엄청난 독재였다.

이나바 회장은 회의에서 자신이 먼저 얘기를 하기 전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회의의 결론도 미리 결정해놓고 있었다. 그 바람에 1시간을 넘기는 회의가 없었을 정도였다. 회의실은 단지 자신이 내린 결론을 통보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기업을 군대 조직처럼 운영한 것이다.

이 같은 독재 때문에 그에게는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별명이 붙었다. ‘독재자’,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등이었다. <파낙, 류재현 지음>

일본 ‘유통업계의 제왕’으로 일컬어졌던 나카우치 이사오(中內功) 다이에 그룹 회장은 카리스마가 절대적이었다. 40년 동안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 이른바 ‘톱다운 경영’이었다.

나카우치는 고베의 암시장에서 장사를 시작, 1957년 오사카 변두리에 다이에이 가게를 열었다. 이후 40년 동안 철저한 염가 전략으로 연간 매출액 5조 엔의 그룹으로 키웠다. 하지만 그는 ‘독선 경영’ 때문에 엄청난 적자를 내고 유통혁명에서 뒤지고 말았다는 지적에 따라 1999년 퇴임했다. 그는 떠나면서 그룹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아지노모토 사장 출신의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있었다. <한국기업이 망할 수밖에 없는 17가지 이유, 이광현 지음>

‘갑질 경영’은 기업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도 기업에게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 갑질이 얼마나 심했으면 광고대행회사들이 대한항공 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기피했을 정도라고 했다.

조 전무의 갑질을 정리한 ‘조현민 만행 리스트’라는 게 온라인에 나돌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조현민 전무의 갑질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성토가 올라오고 있다.

외국에서도 망신살이다. 영국의 BBC방송은 ‘땅콩 분노 자매(Nut rage sister)가 돌출 행동에 사과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승객 줄어들 보도가 아닐 수 없다. ‘갑질 경연대회’라는 게 열린다면, 대한항공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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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기자  belly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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