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마포칼럼
[마포 칼럼] 우산의 '과거사'
  • 이정선 기자
  • 승인 2018.04.13 08:47
  • 댓글 0

‘남녀칠세부동석’이었던 시절, 여성들은 외출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갈 때 ‘장옷’으로 온몸을 감싸는 것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가려야 했다. 그러나 얼굴을 가리면 앞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래서 ‘눈알’만 내놓고 다녔다.

여성이 길을 가다가 남성과 마주치면 반드시 눈길을 돌려서 외면했다. 이를 ‘내외한다’고 했다. 그 ‘내외법’이 엄격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이 아니라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임금에게 장옷을 폐지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갔다. 개화의 물결은 장옷을 점점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수백 년이나 내외했던 ‘관습과 전통’을 하루아침에 버리기는 힘들었다.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이것만은 절대로 벗을 수 없다(?)”며 버텼다.

여학생의 부모가 학교를 찾아가서 선생님에게 삿대질하며 따지는 일도 벌어졌다. 장옷을 강제로 벗기려고 한다며 자퇴하는 사례까지 생기고 있었다.

그랬는데도 장옷은 사라질 수 있었다. ‘대용품’인 우산 덕분이었다. 여성들이 우산을 들고 다니다가 남성이 저만큼 보이면 이를 펼쳐서 몸을 가리게 된 것이다.

우산은 여학생에서 ‘아줌마’에게로 퍼졌다. 곧 ‘여성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 바람에 바깥 구경을 하는 여성은 맑은 날에도 우산을 들고 다녔다. 그런 우산을 ‘내외용 우산’이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우산은 수입품인 ‘서양 물건(洋物)’이었다. 바다를 건너온 우산은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남성들이 아내나 애인에게 우산 하나를 마련해주려면 제법 부담스러웠다. “각시에게 우산 하나 사주지 못하는 사내”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했을 정도였다.

초기의 ‘내외용 우산’은 모두 검정 색깔뿐이었다. 빨갛거나 노랗고 파란 ‘컬러 우산’은 허용되지 않았다. 아무리 개화한다고 해도 동방예의지국의 ‘예의’까지 밀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검정 우산이 여러 가지 색깔을 알록달록하게 갖추는 데에는 얼추 한 세대, 몇 십 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검정 우산에 수를 놓아서 들고 다녔다. 레이스를 달고 쇠고리로 ‘쥘손’을 만들어 멋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신식 여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세상의 눈초리를 과감하게 무시하고, 컬러 우산을 즐기게 된 것이다. 우리 우산에는 이런 ‘과거사’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과거사다. 지하철 안에서도 바짝 붙어 있는 남녀가 흔해졌다. ‘초미니’ 스커트를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이 거리에 넘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성범죄가 늘어나고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그 운동이 확산되면서 ‘펜스 룰(Pence Rule)’이라는 낯선 영어가 자주 들리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의원이던 당시 어떤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어떤 여성과도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말이라고 한다. 여성과 만나는 것을 가급적이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얘기라고 했다.

그래도 남의 나라 말인 ‘펜스 룰’은 어딘가 껄끄럽다. 한 세기 전의 ‘내외’라는 말을 다시 찾아서 쓰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이정선 기자  bellykim@daum.net

<저작권자 © 토요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기획·분석기사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