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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 이야기] <7> 기자들의 텃세
  • 김영인
  • 승인 2018.04.1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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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보자.

기레기가 간사와 머리를 맞대고 출장계획을 짜며 쑥덕공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다른 신문사의 박○○ 기자가 기레기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사세가 크지 않아 한국은행에 기자를 출입시키지 않았다가 얼마 전부터 내보내기 시작한 신문사의 기자였다. 박 기자는 기자생활이 짧은데다 나이도 젊은 신참 기자였다.

박 기자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기레기 선배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한국은행 출입기자는 달랑 한국은행 한 곳만 취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중은행이 있고, 특수은행이 있었다. 현재는 금융감독원으로 확대된 은행감독원이 있고, 은행연합회도 있었다. 금융 관계기관도 상당히 있었다. 물론 지방은행도 가끔 취재해야 했다. 외국은행 국내 지점도 빼먹을 수 없었다. 소위 '나와바리'가 간단치 않게 광활한 것이다. 나와바리 역시 '당고'처럼 일본식 표현이다.

이 나와바리에 출입하려면, '한국은행 출입기자 명단'에 들어야 한다. 한국은행은 출입기자 명단을 작성, 각 나와바리에도 보내주고 있다. 명단에는 기자의 이름과 함께 사진도 들어 있다. 한때는 '금융단 출입기자 명단'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박 기자가 한국은행을 출입하다 보니 애로사항이 하나 생겼다. 출입기자 명단에 박 기자는 물론이고 박 기자의 신문사 자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안면을 익히지 못한 몇몇 나와바리에서는 모르는 기자라며 취재를 거부당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었다. 신설 신문사나, 또는 인력이 부족한 신문사가 사세를 확장하고, 취재범위를 넓히기 위해 새로운 '출입처'에 기자를 내보낼 경우 종종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다.

주로, 기존 출입기자들의 '텃세' 때문이었다. 기존 출입기자들이 새로 출입하는 기자를 '기자실'의 공식 멤버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출입기자가 많아지면 취재경쟁도 그만큼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텃세가 취재경쟁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취재경쟁 따위는 우스웠다. 기사는 빠뜨려도 그만이다. 기자들이 사용하는 속된 말로 '물먹어도' 그만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낑이었다. 출입기자의 숫자가 늘어나면, 낑이라는 '파이'를 더 잘게 쪼개서 나눠먹어야 하는 것이다.

파이를 잘게 쪼개면 기자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몫은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눠먹기가 싫은 것이다. 먹을 바에는 큰 파이를 먹겠다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그래서 새로 출입하는 기자는 기자실의 공식 멤버로 인정받지 못하고 외톨이가 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아예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신문사의 대표'로 출입하는 것인 만큼, 어차피 공식 멤버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도 조건을 다는 게 기자실의 풍토였다. 받아들이되 "새로 출입하는 신문사의 기자는 6개월 이상 지나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다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거나, 마지못해서 받아들이더라도 가급적이면 늦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게 기자실의 '생리'였다.

기자들은 '동업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배타적이었다. 무관의 '제왕'은 숫자가 많으면 곤란한 것이다. 동업자가 정식으로 무관의 제왕 행세를 하기 위해서는 기자실의 공식 멤버가 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을 기자실 '가입'이라고 했다. 또는 '기자단 가입'이라고 했다.

박 기자의 부탁이란 요컨대 기자실에 가입시켜달라는 얘기였다. 박 기자는 신참이지만, 똑똑했다. 기사를 가끔 예리하게 썼다. 낑을 나눠먹자고 가입시켜달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취재를 거부당하는 것이 억울해서 가입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야 취재를 마음먹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레기는 이런 박 기자에게 가끔 점심을 사주기도 했다. 박 기자도 기레기를 따랐다. 도와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어려웠다. 기자실 가입은 출입기자 전체가 모여서 '기자 총회'를 열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타이밍이 껄끄러웠다. 마침 출장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지금 박 기자를 가입시키면 당장 파이를 잘게 쪼개는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었다.

모두들 가입을 반대할 것이 뻔했다. 박 기자와 무슨 관계라도 되는가 따지려고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때가 안 좋았던 것이다. 박 기자의 기자실 가입은 논란 끝에 어렵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글은 도서출판 지식공방에서 펴낸 저서 '촌지'를 약간 수정, 보완해서 재록하는 것입니다>

김영인  belly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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