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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 이야기] <5> 부산 완월동
  • 김영인
  • 승인 2018.04.04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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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짧은 계절이라 부산에 도착하니 이미 캄캄했다. 늦게 도착한 만큼 서둘러서 숙소부터 배정했다. 제법 그럴 듯한 호텔이었다.

배정된 숙소는 당연히 '1인 1실'이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무관의 제왕에게 '2인 1실'을 배정하는 무례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랬으니 숙박비만 따져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도 그 숙박비를 지불하는 기자는 없었다. 기자에게는 숙박비 역시 공짜였다. 누군가가 대납할 것이었다.

그러고도, 그 비싼 호텔 객실에서 잠을 잔 기자는 절반 정도뿐이었다. 나머지 기자들은 객실 한곳에 모여서 밤새도록 고스톱을 쳤거나, 또는 엉뚱한 장소에서 '배설의 본능'을 충족시킨 것이다.

늦었으니 저녁식사는 생략하기로 했다. 곧바로 방석집으로 향했다. 방석집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정이다. 그것도 고급 요정이다.

방석집에서는 벌써부터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귀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파트너'도 기자의 머릿수만큼 대기하고 있었다. 손님은 서울에서 내려오신 귀한 언론인이다. 각별하게 대접해야 했다. 그러니 파트너도 당연히 '얼짱'이나, '몸짱'이어야 했다. 귀한 손님의 눈에 덜 차는 파트너는 그 자리에서 퇴짜를 맞는 경우도 가끔 있었던 것이다.

술판이 벌어졌다. 귀한 손님이었지만, 행동은 별로 그렇지 못했다. 귀한 손님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폭탄주가 돌고, 밴드가 울리고, 파트너를 끌어안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들을 뽑았다. 고급 양주가 수십 병이나 사라졌다. 덜 취해보겠다며 슬그머니 쏟아버린 양주까지 포함하면 그럴 만했다.

술값은 누가 냈을까. 물론 술값을 낸 기자는 없었다. 기자에게는 술값 역시 공짜였다. 술값뿐 아니었다. 파트너에게 주는 '꽃값', 밴드에게 주는 '돼지 멱따는 소릿값'을 낸 기자도 없었다.

하다 못해 술자리에서 담배가 떨어지는 바람에 주문한 담뱃값마저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 기자에게는 담뱃값이 한 갑에 몇 만 원으로 올라도 관계없을 것이었다. 모든 부담은 '남의 몫'이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모처럼 부산에 왔으니 유명한 '완월동' 구경을 빠뜨릴 수 없었다. 고스톱을 친다며 호텔로 돌아간 기자들을 제외한 몇몇 기자들이 완월동을 외쳐댔다. 기자들이 가겠다고 우기는데 거절할 만한 강심장은 없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대기하고 있던 지역 금융기관의 승용차를 나눠 타고 완월동으로 달려갔다. 운전기사가 힘들다고 불평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자들의 귀에는 불평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늦게 도착한 기자들을 기다리고, 방석집에서 대접하고, 완월동까지 동행하는 지역 금융기관 관계자들의 지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이처럼 눈과 귀를 막아버릴 때도 있었다.

어쩌면, 기자들에게 그 정도의 '민폐'는 당연한 것이었다. 완월동의 '꽃구경'과, 희한한 '눈요기'도 따지고 보면 '취재'의 일환이라는 궤변이 성립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완월동이 술주정뱅이로 가득 차서 흥청망청한다면 지역경제가 활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반대로 분위기가 썰렁하다면 지역경제가 그만큼 어려운 셈이다. 이런 '중요한' 취재를 하는 마당에 약간의 민폐는 있을 수 있었다. 그 정도의 취재도 협조해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기자생활을 못해 먹을 것이다.

기자들의 이 궤변과 비슷한 '논리'를 공무원들이 써먹은 적도 있었다. 언젠가 충청북도의 어떤 군청에서 공무원 3명에게 '음주 문화상'이라는 공로패를 주고, '부상'으로 건강팔찌와 연말 부부동반 선진국 견학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했던 해프닝이 그랬다.

공무원들의 '공로'라는 게 우스웠다. 일주일에 여러 차례 술을 마시면서 지역 여론을 수렴, 업무에 반영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공로였다. 술을 자주 마시면서도 술버릇이 좋았고 근무성적까지 우수한 공적도 인정했다고 했었다.

당시, 군청의 이름을 '주산군청(酒山群聽)'으로 고치라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지고 대나무 회초리가 전달되기도 했었다. 희한한 논리였다.

어쨌거나, 기자들은 취재를 이렇게 끝냈다. 간사가 나눠준 '출장비'인지, '취재비'인지에는 손도 대지 않고 취재를 마친 것이다.

약간의 취재비를 지출한 기자가 없지는 않았다. 어떤 기자가 아내에게 선물한다며 이튿날 아침 일찍 '자갈치시장'에 가서 생선을 한 가방 가득 산 것이다. 무겁다고 쩔쩔매면서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그 큰 가방을 소중하게 들고 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기자 전체가 쓴 취재비는 큰 가방 하나와 생선 사는 데 들어간 돈이 전부였다. 고스톱을 하면서 잃은 돈을 제외한다면, 기자들은 취재비를 고스란히 남기고 있었다. 돈을 딴 기자들은 취재비를 오히려 '늘렸을' 게 분명했다.

 

<이 글은 도서출판 지식공방에서 펴낸 저서 '촌지'를 약간 수정, 보완해서 재록하는 것입니다>

 

김영인  bellyki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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