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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방어기제
  • 여용준 기자
  • 승인 2017.12.2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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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여용준 기자]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894년 자신의 논문 ‘방어의 신경정신학’에서 ‘방어기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뜻한다. 쉽게 말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왜곡해서 기억하거나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나 드라마, 문학작품에서 꽤 재미난 소재로 많이 쓰이기도 한다. 보통 ‘방어기제’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라면 주로 픽션들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지난 27일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에서 열린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17차 공판에서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안가에서 2014년 9월 12일 단독 면담을 한 것 같은데 안봉근 전 비서관을 만난 적 없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이 부회장은 “안 전 비서관이 왜 그런 착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안가에서 대통령을 만난 것은 2015년 7월 25일과 2016년 2월 15일 두 번뿐”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제가 기억 못 하면 적절치 못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제가 치매다”라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기억 못할 리가 없다는 완곡한 표현이었다. 국내 최대 기업을 효과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좋은 기억력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런데 지난해 말 최씨의 국정농단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그는 조금 달랐다. 대기업 총수들이 모두 모인 이날 청문회에서는 이 부회장에게 질문공세가 쏟아졌다. 이날 의원들은 이 부회장에게 “최순실씨를 언제부터 알게 됐느냐”고 물었고 이 부회장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질문은 여러 차례 이 부회장에게 향했지만 그는 매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만을 반복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의 죄목에 ‘국회 위증’ 혐의로 포함시켰다. 그가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증언을 했다고 본 것이다. 자신의 기억력을 꽤 신뢰하는 사람인만큼 그의 증언은 1심에서 거짓이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그런데 어쩌면, 그의 기억에 ‘방어기제’가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에서 그의 기억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떠올려야 했다. 그래서 명백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의 기억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기억이다. 그래서 기억은 흐트러지고 무의식 심연으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의문점이 생긴다.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은, 최씨와의 관계 자체가 위협이었을까? 아니면 최씨와의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일이 위협이었을까? 어째서 그의 기억은 이토록 오락가락하고 있을까?

여용준 기자  dd0930@satecon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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