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계란후라이와 따뜻한 주말
[기자수첩] 계란후라이와 따뜻한 주말
  • 여용준 기자
  • 승인 2016.12.27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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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여용준 기자] 어느 이른 저녁, 먹거리를 사기 위해 동네 슈퍼마켓으로 갔다. 혼자 사는 남자가 장을 본다 한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 몇 가지였다.

오랜만에 간 단골 슈퍼마켓에는 평소와 다른 풍경이 하나 있었다. 계란이 놓여있을 자리가 텅텅 비어있는 것이다. 왜 없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단골 사장님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듯 계란이 없는 이유를 물어봤다. 사장님은 한숨을 푹 쉬며 “계란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일이 있기 며칠 전, 한 대형 제빵기업은 “연말까지는 수급이 충분히 될 것 같지만 계란이 많이 들어가는 몇 가지 제품은 생산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형마트의 풍경을 떠올려봐도 비싼 가격이기는 하나 계란을 판매하고는 있었다.

꽤 흥미로운 풍경이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전염병은 아니더라도 AI라는 국가적인 재앙이 발생했을 때 어느 계층부터 몰락하는지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물론 계란이 ‘없으면 큰일 날’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식탁위의 가장 기본적인 반찬이 되고 많은 요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중요한 식재료다. 가격도 저렴해서 서민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런 계란이 부족해지자 가장 낮은 곳부터 계란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조류(鳥類)들에게 AI가 있다면 사람들에게는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 독감의 유행소식과 함께 백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탐욕스런 권력층을 묘사하는 어느 픽션에서는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백신(혹은 의약품)을 독점하고 시민들이 죽게 내버려두는 이야기가 나온다.

권력층에 대한 대중들의 감정이 반영된 가상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와 같은 불신을 현실세계에서도 지울 수는 없다.

만약 독감백신이 아니라, 걸리면 바로 죽을 수 있는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한 백신이라면, 감히 “부족하다”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글은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다. 단지 동네 슈퍼에 계란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의 시스템을 불신하기에는 꽤 멀고 복잡한 의식의 흐름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미 이 정부는 여러 번 국민의 신뢰를 져버린 이력이 있다. 아마도 그 덕분에 ‘계란’을 봐도 이 정부가 우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모양이다.

쌀쌀한 겨울이지만 토요일 오후가 되면 늘 그렇듯 우리는 광화문 광장으로 향한다. 따뜻한 주말을 포기하고 추운 광장으로 향하는 이유는 ‘따뜻한 주말’을 되찾기 위함일 것이다.

‘따뜻한 주말’은 정부를 믿을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만 주말에 발 뻗고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년(丁酉年) 새해에는 ‘따뜻한 주말’을 꿈꿔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얼큰한 김치찌개, 그리고 윤기가 흐르는 계란후라이로 저녁을 누릴 수 있는 ‘따뜻한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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