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화관, 택배, 그리고 청춘
[기자수첩] 영화관, 택배, 그리고 청춘
  • 여용준 기자
  • 승인 2016.09.02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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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경제=여용준 기자] 한국 사람은 영화를 많이 본다. 지난해 한국인 1인당 영화관람 횟수는 4.2회로 미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영화관은 1만원 내외의 돈으로 2시간 남짓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저렴한 문화공간이다.

이런 영화관의 1인당 평균 영화관람 요금이 올 여름 처음으로 8000원을 넘어섰다. 2004년 이후 처음이다.

2011년에 7900원대까지 올랐다가 점차 내리면서 2013년 7100원대로 내렸다. 그러다 다시 치솟더니 기어이 8000원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마치 “세상 물가 다 오르는데 안 오르면 섭섭하다”는 심정으로 멀티플렉스는 가격을 올리고 있다.

멀티플렉스들은 가격이 오르는 만큼 시설 개선과 서비스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하지만 구멍나고 끈적한 시트와 냄새나는 바닥을 가진 상영관은 여전히 많다. 아마 시설이 완전 개선될 때 쯤, 또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회의적인 생각마저 든다.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지난달 25일 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이 그 이유다.

과징금이라던지 시정권고로 제재 조치를 받을 수 있겠지만 적은 돈으로 즐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문화공간’이 침해된 상처는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소주, 담배 등 기호품의 가격인상을 겪어야 했고 특히 여성들은 생리대 가격인상으로 큰 불편과 위생상의 위험을 겪어야 했다.

앞서 말한대로 ‘세상 가격 다 오르는데’ 영화관 가격이 오르는 건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학자금 대출 갚고 자취방 월세 내고 겨우 끼니 떼우는 청춘들의 숨구멍 정도는 만들어줘도 좋지 않은가.

추석 명절을 앞둔 대학생들은 고향에도 내려가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로 한 푼이라도 벌고 있다.

아르바이트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택배 상하차조차 야간 12시간 일해도 7만원 겨우 넘게 받는다. 허리가 끊어지고 손목이 부러지도록 택배를 날라봐야 2시간 일하면 영화 1편 볼 돈을 벌 수 있다.

어쩌면 이건 ‘빅맥지수’보다 더 심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영화관이라도 가지 않으면 우리는 1만원으로 어떤 문화활동을 할 수 있을까?

20대들의 술 소비량이 늘었다는 보도가 있다.

청춘들에게 ‘놀이문화’도 없고 ‘놀 여유’조차 없으니 그저 소주잔이라도 기울인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소주 가격은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것이다. 세상 가격 모두 우리를 배신했 듯 소주도 우리를 배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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