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작가의 단편소설] 시인의 귀향

토요경제 이정 작가 승인 2021.06.09 06:31 의견 0

시인의 귀향 - 3


나는 오래된 미루나무가 마당 가에 서 있는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소학교에 다니는 아들 하나 달랑 데리고 산다는 소문을 듣고 학용품을 사 들고서. 현장에 파견된 북측 감시원이 뒤따라와 양팔을 벌려 가로막았지만, 머잖아 통일이 되면 당신처럼 민족의 소통을 막는 사람부터 잡아넣겠다는 농담으로 그의 몸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퉁기는 척하다가 동행하는 것으로 한 발 물러섰습니다. 그들은 겉으론 조국의 혁명전사임을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리는 혁명은 죽도록 노력해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남쪽 사람들과 일하니까 누구보다 먼저 기울어진 조국의 정세를 눈치 챘습니다. 그래서 용돈 몇 푼을 얻으면 슬그머니 주장을 거둬들이곤 했지요.

그녀의 집 미루나무는 노란 이파리를 지붕과 마당으로 팔랑팔랑 떨구고 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햇볕이 두껍게 내려앉은 마당 귀퉁이 밭에서 남새를 뜯던 그녀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야윈 모습이었습니다. 벽 뒤에서 말라 가는 화초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다 당신들 탓이라고 원망하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송이 씨앗을 주시면 저희가 철수하기 전에 복구해 놓겠어요."

나는 입가에 멋쩍은 웃음을 달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세상에 송이 씨앗이 어디 있겠나요? 설령 그 포자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번식시킬 능력이 있기나 하나요? 미안함을 얼버무리려고 해본 말임을 그녀는 알아차리고 먼 하늘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이미 많은 것들을 체념하고 살아온 사람의 반응이란 걸 나는 이내 눈치 챘습니다.

"남편 분께서는 어디 계세요?"

아낙네와 난처한 대화를 이어가기가 어쭙잖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고개가 더욱 위로 잦혀졌습니다. 얼굴이 아예 하늘을 향했습니다.

"피뜩 말하라요. 내 앞에선 말해도 일 없소."

어차피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바에야 용돈 값이나 확실히 하겠다는 듯 감시원이 나섰습니다. 그녀가 이번에는 고개를 땅 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오래 전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남의 아픈 곳을 건드린 것 같아 무안했습니다.

"아이만 데리고 단출하게 사시는 이유가 있었군요."

"중학교 미술교원으로 일했더랬어요. 하지만 남편이 사라진 일로 당에 누를 끼치는 사람이 되어 교원 자리를 더는 지키고 있을 수 없었어요. 대여섯 해 전 아이와 함께 이 산속에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그녀는 애를 쓰는 듯했습니다만, 말투는 남편을 원망하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녀의 사정에 더 귀 기울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했다는 듯 입을 다물었습니다. 앞에 있는 감시원을 의식하나 했지만, 그것은 남쪽 사람들의 선입견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남에게 속을 털어놓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막사로 돌아온 나는 그날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없는 여자였고, 나는 아내가 없는 남자였습니다. 그녀에게 지속되고 있을 상실감이 내 것인 양 나를 아프게 했습니다.



이 정 :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2010년 <계간문예>로 등단했다. 경향신문에서 민족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현재 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 사단법인 공정세상연구소 소장,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국경>(문체부 우수도서), <압록강블루>(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작), <기억>이 있고, 단편소설집 <그 여름의 두만강>이 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북한과 북한사람들에 대한 소설을 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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